청주남성합창단
중후한 나이, 중후한 음악과 만난 남자들
남성합창의 매력은 중저음의 하모니에서 나오는 파워풀한 에너지에 있다. 여성합창과는 또 다른 섬세함과 감미로움이다. 청주남성합창단의 연주가 청중의 가슴에 더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은 이들이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이기 때문이다.
노래를 좋아하는 중년남성들이 만나다
월요일 오후 7시, 청주예술의전당에서 몇 분되지 않는 거리의 한 건물 지하 연습실. 키가 훤칠한 한 중년 남성이 제일 먼저 문을 열고 들어와 연습실 한쪽에 접혀져 있는 의자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펴서는 정렬한다. 의자 수를 대충 세어보니 족히 50개는 되어 보인다. 악보대가 하나하나 채워질 무렵 이번엔 머리가 훌렁 벗겨진 중년 남성이 웃는 얼굴로 연습실에 들어선다. 이어 하나 둘 들어서는 아저씨들.
정식 연습시간은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다. 한 시간이나 일찍 온 아저씨들은 지휘자가 오기 전에 미리 앉아서 사전 연습을 한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다. 노래 부르는 것이 즐겁고, 좀 더 잘 부르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이렇게 매주 월요일 저녁 8시면 삼삼오오 모인 중년 남성들, 청주남성합창단의 노래가 시작된다.
청주남성합창단(단장 남기창)은 노래를 좋아하고, 노래 부르는 것을 즐거워하는 중년 남성들이 마음을 모아 만든 합창단이다.
지난 2005년에 창단된 이래 청주에 크고 작은 다양한 그룹의 합창단들 중 꾸준히 명맥을 이어오며 지역을 대표하는 남성합창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음악을 전공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퇴직한 교장선생님, 사업가, 자영업자, 회사원, 교사, 대학교수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다양한 연령층의 남자들이 모였다. 하는 일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지만 모두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단원도 처음엔 20명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60명에 이른다. 지난 해 정기공연 무대엔 46명이 무대에 섰다.
청주남성합창단이 지향하는 목표는 세 가지다. 첫째는 합창단을 만든 취지에 맞게 순수한 아마추어 합창단으로서 노래를 통한 즐거움을 소유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기왕 부르는 노래, 다른 사람들에게도 들려주자는 것이다. 정기공연, 순회공연을 자주 하는 이유이다. 세 번째는, 좀 더 나아가 소외된 이웃, 불우한 이웃을 위해 노래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노래만 하는 합창단이 아니라 자신들이 가진 달란트로 사회봉사까지 해보자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이만하면 청주남성합창단이 예사롭지 않은 단체임이 느껴질 것이다.
노래는 즐겁게, 실력은 확실하게
아마추어라고 해서 실력을 무시하면 안 된다. 매주 월요일 저녁 8시부터 시작되는 연습 외에도 동․하계로 나눠 매년 두 차례 자체 수련회를 갖는데, 이 수련회가 이채롭다.
동계 수련회는 지난 일 년 동안의 활동을 평가하고 신년 계획을 수립하면서 단원들과 교제하고 소통하는 기회로 갖는다.
하계 수련회는 동계 수련회와는 성격이 다르다. 합숙훈련으로 진행되는 하계수련회엔 하드트레이닝이 이뤄진다.
중요한 정기공연을 앞두고 있을 때는 단원들의 생활 속에서도 연습이 이뤄진다. 연주곡을 MP3나 테이프에 담아 틈날 때마다 들으면서 곡을 익히고, 개인 연습을 하는 것이다.
시간을 뺏긴다는 생각이 들면 누가 이렇게 노래에 열정을 쏟겠는가. 이들에겐 노래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합창단의 목소리를 가다듬어 주고, 이들의 목소리에 색을 입혀주는 역할은 최준근 지휘자가(현 청주시립합창단원) 한다. 이태리 G.Forzano 아카데미(오페라연주자과정)와 이태리 로마 Arena 아카데미(합창지휘)를 졸업한 최 선생은 5년 넘도록 합창단과 함께 호흡하며 이들의 멘토가 됐다.
청주남성합창단의 하모니는 바로 이런 훌륭한 지휘자와 단원들의 노래에 대한 열정, 그리고 사랑이 만나 이뤄진 것이다.
라면 한 봉지, 노래 한 곡에 사랑을 싣고
청주남성합창단은 창단연주회를 비롯해 지금까지 크고 작은 공연활동을 펼쳐왔다. 교회, 학교, 병원 등지에서 초청 및 위문공연을 비롯해 남성합창페스티벌, 충북합창제, 청주의노래 합창대축제 등 각종 합창제 무대에 섰다.
지난 해 정기공연은 세계적인 성악가 연광철씨와 무대를 같이해 단원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연광철이라는 대 성악가와의 협연 무대라는 점에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을 뿐 아니라 청주남성합창단만의 라면 1봉지 입장권으로 언론에 소개까지 되는 등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청주남성합창단은 매년 정기공연의 입장권을 라면 한 봉지로 받고 있다. 어려운 이웃을 돕자는 설립 취지를 실천하기 위해서다.
“작년에 가장 많은 라면이 들어왔어요. 라면 대신 후원금을 주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후원금도, 라면도 모두 공연장에 들어왔던 그대로 복지시설에 전달합니다. 지난해엔 청주여자청소년쉼터 느티나무에 기부했습니다.”
청주남성합창단의 정기공연 입장권은 앞으로도 라면 한 봉지가 될 것이다. 관객입장에선 음악도 감상하고, 이웃돕기도 실천하는 셈이다.
충북을 대표하는 남성합창단
청주남성합창단은 해마다 충남, 충북 대전 등 3개 지역 남성합창단들이 참가하는 페스티벌에 충북에서 유일하게 참가했다고 한다. 올해는 충북에서 행사가 개최된다. 충북에서 열리는 만큼 더 좋은 모습, 더 나은 실력을 보여 주고 싶은 욕심이 나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도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불렀는데요, 앞으로는 테마를 갖고 무대를 구성해보려고요. 특히 50대 이상의 나이 드신 분들을 위한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요.”
소외받기 쉬운 노년층을 위한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는 청주남성합창단. 사람들에게 노래로 마음의 위안을 주고 싶은 그들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올해도 변함없는 모습, 아니 더 애틋한 사랑을 갖고 도민들을 찾을 계획이다.
“앞으로 합창문화의 확산과 청주를 대표하는 남성합창단이 되기 위해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비록 아마추어주지만 도민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청주남성합창단원들이 도민들에게 조심스럽게 내놓는 바람이다.
인터뷰-남기창 청주남성합창단 단장
“충북이 순수 아마추어합창제 만들었으면…”
남기창 단장(71, 전 청주대 교수․충북산악연맹회장)은 산 좋아하고, 노래 좋아하는 사람이다. “사랑은 곧 조화다”라고 말하는 그가 합창을 좋아하는 것은 합창이야말로 ‘조화’로 이뤄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모니이기 때문이다.
젊어서는 네팔 투쿠체, 북미 맥킨리, 인도 챠우캄바, 에베레스트 로체봉 등 세계 대륙의 정상의 품을 찾아다녔다. 자연이 허락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연과 사람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한다. 그는 그 ‘사랑’을 노래로 풀어나간다. 노년에 노래로 이루는 ‘조화’는 에베레스트의 협곡과 인생의 고비 고비를 넘어 이제 달관의 자리를 찾은 듯 평화롭다. “노래를 하다 보면 욕심이 없어진다”고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이다. 사람도 음악 같아야 한다고 말하는 그.
“충북이 경연이 아닌 순수한 아마추어합창페스티벌을 만들면 좋겠어요. 합창의 저변확대는 물론 우리 지역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도 될 수 있잖아요.”
패기가 넘치는 젊은 시절처럼 수천 미터의 등정은 할 수 없지만 노래로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은 등정할 수 있지 않을까. 그의 바람이다.
“음악처럼 아름다운 게 있을까요? 사람도 음악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삶도 노래처럼 아름답기만 하다면 좋을 텐데……”
/ 글: 정예훈 (사진:서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