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맛집의 비밀은 정성,정직함
대물림전통음식점 청송통닭
“튀김은 바삭바삭, 닭은 어찌나 보들보들한지 왜 이제야 여길 알게 됐는지 후회되더라고요.”
“오랜만에 찾아갔는데 어렸을 때 그 맛이랑 똑같았어요.”
“청송통닭집이 지금도 있네요. 양념치킨에 밀려 사라졌을 줄 알았는데. 이 집은 통째로 튀긴 닭 맛이 일품이었어요.”
인터넷 검색창에 ‘청송통닭’을 찾으면 청주 맛집 소개, 카페, 블로그, 미니홈피 등에 다양한 소개가 나온다. 모두 한결같이 칭찬일색이다. ‘40년 전통의 변하지 않는 맛집’으로 알려져 있는 청송통닭은 통닭과 삼계탕으로 유명하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각종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양념치킨이 익숙하듯 ‘통닭’이란 이름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세대들에게 청송통닭은 최고의 브랜드였다. 소위 있는 집 자제들이라 불리는 이들의 소풍가방엔 항상 청송통닭이 필수품처럼 들어 있었다.
<청송통닭>
세월이 지나고 세상이 달라져도 바삭바삭한 통닭 맛은 40년 전 그대로여서 지금도 어린시절 청송통닭을 먹던 추억을 가진 중년부터 젊은 친구들까지 즐겨 찾는다.
40년 전통의 변함없는 맛의 비밀은 1971년 이 곳에 청송통닭의 문을 연 이순이(73) 할머니의 손에서 비롯된다. 100% 천연재료와 싱싱한 육계, 그리고 이 할머니의 정성이 맛의 비결이다.
“처음부터 잘 된 건 아니에요.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고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서 뭐래도 해야겠다 생각하고 시작한 것이 삼계탕집이었는데, 처음엔 하루에 한 마리도 못 팔은 적이 많았어요. 그래도 이왕 시작했으니 끝까지 해보자라는 오기로 계속 했죠. 그랬더니 조금씩 손님들이 늘더라고요.”
창업당시엔 도청 후문에 2평도 안 되는 곳에 가게를 얻어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중앙공원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것을 보고 남편의 권유에 따라 지금의 자리로 가게를 옮겨 지금까지 청송통닭의 명성을 지켜오고 있다.
“어느 날 손님이 제가 음식 준비하는 것을 보시고 ‘어쩌면 그렇게 닭을 집에서 씻는 것보다 더 깨끗하게 씻어요?”하시면서 꼼꼼하게 위생관리 하는 모습을 보고 입소문을 내주시더라고요.“
이 할머니의 철저한 위생관리는 지금도 업계에서 알아준다.
시어머니의 뜻을 따라 가업을 잇고 있는 며느리도 “어머니가 닭 씻는 것을 보고 저도 처음엔 놀랐어요. 꼭 어린 아이 씻겨주는 것 같았거든요.” 라며 혀를 내두른다.
“우리가 이렇게 성공하기까지는 청주시민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죠. 참 감사해요.”라며 겸손의 말을 아끼지 않는 이 할머니. 그러나 성공이란 열쇠를 거머쥐기 전까지는 이 할머니의 피땀 어린 고생이 밑거름이 되어야만 했다.
잘 자야 하루 2시간. 그렇지 않으면 밤을 꼬박 새우며 일해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상하수도가 발달돼서 주방에서 수도꼭지만 틀면 물을 펑펑 쓸 수 있었지만 이 할머니가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펌프를 이용해 지하수를 길러 물을 써야 했다.
밤늦게 가게 일이 끝나고 두 아들을 챙기며 남은 집안 살림을 하다보면 어느 새 새벽 두 시. 그나마 잠이라도 잘 수 있는 날이면 다행이다. 단체 예약 주문이 들어 온 날에는 그 짧은 밤잠도 포기하고 일을 해야 했다.
낮엔 손님맞이부터 음식을 만드는 것은 물론 연탄불 위의 기름 가마솥을 하루에 수 십 차례 들었다 놨다하는 수고를 해야 했다. 시시때때로 연탄 가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하루는 연탄재를 들고 나가면서 졸기도 했다고 한다.
너무 바빠서 끼니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정히 배가 고프면 가마솥의 끓는 닭국물 한 대접 마시고 손님을 맞았다.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면 눈물겹죠. 아이들한테도 잘해주지 못한 것도 아쉽고. 엄마 말 한번 거역하지 않고 건강하고 착하게 잘 커준 아들들한테도 감사해요.”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왔다”는 이 할머니의 유일한 후회는 두 아들에게 너무나 엄격했던 어머니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올곧은 어머니의 가르침과 성품이 있었기 때문에 두 아들 모두 어엿한 사회인사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참하고 똑똑한 맏며느리가 지금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며느리는 아들보다 제가 먼저 봤어요. 어찌나 참하고 예쁘게 생겼는지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 아들에게 바로 전화해서 만나보라고 했죠.”
지금도 큰 며느리(송형미․42)를 ‘천사’라고 부르는 시어머니의 며느리 사랑은 후하다. 며느리 역시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자부심이 남다르다. 둘 사이가 어찌나 살가운지 모르는 사람은 모녀지간으로 착각할 정도다.
“가게 일을 돕는 것을 보니까 완전히 맡겨도 잘하겠더라고요. 40년을 피땀 흘려 꾸려 온 것인데 남한테 넘기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았고요. 그래서 며느리에게 물려줬죠.”
지난 2002년부터 청송통닭의 새 안주인 역할을 하는 큰 며느리. 처음엔 부담감이 컸지만 지금은 든든한 후원자인 시어머니의 사랑에 힘입어 ‘닭이 사랑스럽다’고 말할 정도다.
“뭐든지 자상하게 잘 가르쳐주세요. 옆에서 항상 도와주시면서 힘이 되어주시니까 지금은 크게 어려운 것은 없어요. 어머니께서 옆에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제겐 의지가 돼요.”
어머니의 손맛을 기억하고 있는 청송통닭의 맛에 흠집이 가지 않기 위해 늘 노력하고 있다는 며느리는 “손님들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맛이 똑같다”고 말할 때 안도의 한숨과 함께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창업주인 시어머니가 후계자인 며느리에게 항상 전하는 가르침은 “정성을 담아서 정직하게 하라”는 것이다. 이 할머니의 정성과 정직함은 지난 40년간 청송통닭을 존재할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었다. 그러기에 이 할머니는 며느리가 무엇보다도 일에 대한 애착, 그리고 정성을 갖기를 원한다.
그리고 “돈은 남에게 꾸지 않을 만큼만 있으면 된다. 내가 살아보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라며 큰며느리 건강을 그 누구보다도 걱정한다. 몇 년 전부터 며느리와 함께 운동을 다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장사가 안돼서 힘들 때는 조류독감이 유행할 때였어요. 그 때 저희 가게를 찾아 준 손님들에게 정말로 감사하죠.”
신흥상권 등장으로 성안길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이 할머니는 “다행히 큰 영향을 받진 않았다”며 장거리에서도 찾아주는 단골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리곤 한 가지 바람을 조심스럽게 보탰다. 바로 중앙공원의 문화쇄신이었다.
“물론 중앙공원은 청주의 명소 중 명소인데요, 아시다시피 실제로 와서 보면 가족들이 놀러와 쉴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잖아요. 구도심이 쇠퇴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중앙공원의 문화를 좀 바꿔주셨으면 해요. 중앙공원이 성안길을 찾은 모든 시민들과 가족단위 나들이객이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명소였으면 좋겠어요.”
40년 대물림맛집 새 안주인이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꿈꾸며 바라는 작은 소망이다. 언젠가 그네들의 소망이 이뤄져 성안길에 활기가 넘치고, 많은 사람들이 청송통닭에서 행복한 맛을 느껴보기를 기대해본다.
/ 글: 정예훈, 사진: 구연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