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사람들

성안길터줏대감2-청주약국 신동남 대표

작은지기 2012. 1. 16. 18:23

 

“약 한알이 얼마나 소중한대요.”

시아버지 정신 이어받아 시민들의 건강 지킴이 역할하는

청주약국 신동남 대표

 

 

 

1911년 일제에 의해 헐리기 전에는 청주읍성의 정문 역할을 했던 청주 남문(淸南門)이 서있던 자리. 바로 그 앞에 언제부터인가 청주약국이 있었다.

청주읍성 4대문 중 가장 웅장하고 규모가 컸다는 남문의 영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지금은 표석만 남아있는데 청주약국은 마치 남문터를 사람들에게 알려줘야 할 사명이라도 있는 듯 70여 년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신철우 전(前) 청주약국 대표가 타계한 지 10여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청주약국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신 전 대표를 이어 청주약국을 지키고 있는 신동남씨((49). 잘 모르는 사람은 같은 신씨라 아들쯤 될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실은 신 전 대표의 맏며느리다.

시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가업을 잇고 있는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 나선 날은 바람이 몹시 분 날이었다. 차디 찬 바람에 저절로 얼굴이 일그러지는 날씨였는데 남문 표석 앞에서 환하게 웃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의 모습은 ‘밝음’ 그 자체였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 하얀 약사 가운을 입은 그의 얼굴은 인터뷰 중 나이를 알고 나면서 깜짝 놀라게 했다. 만 49세. 한국나이로는 50줄에 서있는 완숙한 중년의 나이였다. 잘 꾸민 동안이라서 어려보이는 것이 아니라 꾸밈없는 진실한 웃음이 나이를 잊게 하는 얼굴이었다.

 

“아들만 가업을 이으라는 법이 있나요? 미모의 며느리가 하면 더 좋지 않을까요?” 라며 해맑게 웃는 그에게서 청주약국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창업당시 이야기나 아버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청주약국의 역사, 그리고 아버님의 경영철학을 알 수 있었으면 해요.

청주약국의 전신은 독일 유학을 마치고 온 일본인이 하던 ‘소전약국’이었다고 해요. 아버님이 소전약국에서 점원으로 일하셨는데 해방이후 아버님의 총명함을 보고 약사가 아버님께 약국을 이어주셨어요. 그땐 청주약국이 아니라 ‘청주약방’이란 이름을 썼고요. 이후 전 새청주약국 대표셨던 곽한봉 약사를 영입하면서 ‘청주약국’으로 이름을 바꿨지요. ‘약방’이란 명칭이 사라질 때였죠.

약국 운영과 관련한 아버님의 철학은 항상 가족의 건강을 책임질 수 있는 약을 구비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어느 날 아버님께서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장남, 그러니까 지금의 제 남편이죠. 어린 아들이 한 밤중에 갑자기 열이 나고 아픈 데 막상 직접 아들 약을 지으려니까 막막해지더라는 거예요. 그 때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셨어요. “앞으론 이런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약을 팔아야겠다.”고 결심하셨다고 해요.

저도 항상 아버님과 같은 마음을 가슴에 담고 일을 하고 있어요. 약이라는 한자가 즐거울 ‘락’자에 풀 ‘초’자로 만들어졌잖아요. 약이란 삶을 즐겁게 해 주는 매개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 삶을 즐겁게 해주고 싶어요. 건강을 잃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건강이 최고에요.

 

⁋맏며느리가 기억하는 아버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아버님은 존경받는 한학자셨어요. 한의사, 대학생, 교사들에게 한학을 무료로 가르치시고, 방송에도 많이 출연하셨던 걸로 기억해요. 이런 영향 때문인지 자녀들이 모두 한문에 능통해요.

성품이나 인품이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분이셨어요. 정말 대인이셨죠. 돌아가시기 전까지만 해도 365일 집 안에 아버님을 찾는 손님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이지 않았어요. 종근당 그룹의 전 회장이신 이종근 회장님도 청주에 내려오시면 아버님을 뵙고 가곤 하셨어요.

자녀들도 모두 아버님을 닮아 좋은 성품을 지녔어요. 제가 남편을 소개로 만났는데, 첫 인상에 반했잖아요. 남편의 인품이 평생 함께 하고 싶을 정도로 신뢰가 갔거든요.

평소 봉사활동도 많이 하시고, 문중일도 많이 하셨어요. 지역 인재양성이나 장학사업에도 관심이 많으셨죠.

아버님은 제게도 최고의 대우를 해주셨어요. 사랑받는 며느리였죠. 약사 며느리가 가업을 잇는다고 했을 땐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내 나이 80만 넘게 살면 여한이 없겠다”고 늘 말씀하시곤 했는데 정말로 그렇게 됐죠. 82세 때 작고 하셨으니까요.

 

 

⁋가업을 이어 받은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으셨나요?

제가 본격적으로 약국을 맡게 된 게 1988년부터인데요, 훌륭하신 아버님의 일을 이어 받은 것도, 그리고 약사로 사는 것도 제겐 모두 자부심이에요.

약 한 알에 담긴 소중함을 아세요? 지금은 흔한 약이 됐지만 옛날엔 페니실린 한 알이 없어서 목숨을 잃기도 했어요. 전 약 자체를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해요. 약의 발달로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었잖아요.

사람들에게 필요한 약을 줄 수 있다는 것, 치료와 예방으로 건강을 지켜준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잖아요. 그래서 전 저희 약국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항상 고마움과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약을 드려요.

오랜 단골인 할머니들이 그러세요. “같은 소화제라도 여기서 사야 효과가 있다”고. 아마도 약을 파는 사람의 마음가짐 때문이지 않을까요?

약국 직원들도 모두 가족적인 분위기로 오랫동안 함께 일해 온 사람들이에요. 모두 정성스런 마음으로 손님들을 대하죠. 대를 이어 저희 약국을 찾는 단골들이 있는 이유일거에요.

 

 

⁋신 약사님의 인생철학이 남다른 것 같은데요?

8남매 맏며느리로 살면서 이런 일 저런 일을 많이 겪었죠. 그러면서 터득한 것은 욕심내지 않고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올 거라는 거예요. 없다는 게 슬픈 일도 아니고, 있다는 게 좋은 일만은 아니더라고요. 지나고 나면 지금의 내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더라고요. 두 아들들에게도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최선을 다해라. 욕심을 갖고 하면 잘못된 길로 갈 수 있다”고 말해요.

 

⁋오랫동안 성안길을 지켜온 사람으로서 성안길 발전과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도시들이 발전해 가는 속도에 비해 이쪽 구역은 너무 많이 정체돼서 공동화현상이 심각해요. 밤에는 그야말로 깜깜하거든요. 성안길은 정말 귀한 길이잖아요. 성안길처럼 거리를 중심으로 번화한 곳이 우리나라에 몇 곳 안돼요. 성안길의 특성을 살려서 명소화 됐으면 좋겠어요.

저도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약국을 끝까지 지키겠습니다. 이름만 청주약국이 아니라 청주를 상징하는 약국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예요. 최선을 다해 살다 보면 좋은 선물이 주어지지 않겠어요?

 

                             

                                                                   / 글: 정예훈, 사진: 구연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