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사람들

제자들 가슴에 ‘선생님’으로 영원히 남고 싶은 정승섭 교사

작은지기 2011. 12. 30. 12:01

 

“내 아이가 꿈을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

바로 모든 교사의 마음이지요”

제자들 가슴에 ‘선생님’으로 영원히 남고 싶은 정승섭 교사

 

 

 

# 나는 3학년 부장입니다

 2010년 8월 충주고등학교 강당에서 진행된 KBS  ‘도전 골든벨’ 녹화 현장은 팽팽한 긴장감이 넘쳤다. 녹화 막바지에 이르러 남아있는 유일한 도전자를 지켜보는 학생들은 물론 선생님들까지 손에 땀이 쥐어졌다. 특히 고3 지도를 맡고 있는 정승섭 선생은 끝까지 남아 마지막 문제를 풀고 있는 고 3 학생을 바라보며 쿵쾅 거리는 심장 소리 사이로 만감이 교차했다. 

 

입시 준비를 하느라 몸도 마음도 지치고 고단

하기만 할 고3 학생이 충주고등학교의 개교 70주년을 빛내겠다며 고전분투하는 모습은 아슬아슬 하면서도 당찼다.

결국 전사는 제78대 골든벨을 울리며 충주고를 함성으로 가득 차게 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정 선생의 가슴엔 말할 수 없는 감동의 물결이 일렁였다. 고3 수험생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듯 생활해 온 그였기에 이 순간 기쁨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뭉클거렸던 것이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3학년 부장을 맡고 있는 정승섭 선생(51․충주고등학교).

그에겐 학생들이 모두 자신들이 원하는 ‘골든벨’을 울리는 것이 소망이고 꿈이다. 3학년 담임을 맡고 싶은 이유도 학생들 자신이 꿈꾸는 곳에 좀 더 가까이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줄곧 남들은 하기 싫다는, 어렵다며 손사래를 치는 3학년 담임을 맡아왔다.

“고등학교 3학년 부장은 희생과 봉사 정신이 투철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자리에요. ‘교육’이라는 게 연습이 있을 수 없잖아요. 더구나 3학년 부장을 ‘연습 삼아 한 번 해보라’고 아무한테나 맡길 수 없잖아요. 3학년 담임 경험이 많은 분, 진학지도관이 확실하게 서 있는 분, 3학년 담임교사들을 포용하고 리드할 수 있는 분만이 3학년 부장을 할 수 있어요. 여기에 날로 복잡해지는 대학입시제도를 꿰뚫을 정도로 정보력도 갖고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요. 이런 면에서 정승섭 선생님은 충분히 검증된 분이세요.”

오진택 충주고 교장은 3학년 부장으로서 정 선생의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이근하 교감도 “학부모와 학생, 그리고 교사들 간의 교량 역할도 잘 수행한다”며 “학생들에게도 아버지처럼, 때론 형님처럼 모두 이해 해주고 잘 이끌어 준다”며 정 선생의 실력을 인정했다.

실제로 정 선생에겐 2010학년도 서울대학교에 6명을 합격시킨 전력이 있다.

 

인문계 고등학교 뿐 아니라 전문계고등학교에 재직할 당시에도 열정을 갖고 아이들을 가르쳐 대학에 진학시키곤 했다. 단양공고에 근무할 때엔 여학생을 한남대를 거쳐 카이스트에 들어가게 했다. 당시 한남대 총장으로부터 ‘훌륭한 학생을 보내줘서 고맙다’는 내용의 감사의 서신까지 받았다.

그러나 정 선생에겐 이런 전력에 대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시간 보다는 아쉬움과 긴장으로 가슴 졸이는 시간이 더 많다.

특히 수능시험 점수 발표를 앞 둔 날에는 학생들보다 더 잠을 설친다.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학생들에겐 ‘앞으로 적어도 70년이란 인생을 살 텐데 1년 정도 못 기다리겠느냐. 조금 만 더 시간을 투자해보자’고 격려하고 위로해주죠. 사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마음은 많이 아프죠. 3년이란 시간을 고생했을 텐데…. 이럴 땐 잠을 잘 못자요.”

정말이지 인생의 중요한 출발점 앞에 서있는 고3 수험생들을 지도한다는 것은 정말 부담스럽고 무거운 자리다. 그래도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다.

그 ‘누군가’가 바로 정 선생이어서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 학부모들은 그나마 안심할 수 있는 것이리라.

“수적천석(水滴穿石)이라고 했습니다. 작은 물방울이 돌을 뚫듯 일찍 목표를 세우고 노력을 지속하다 보면 좀 더 빠르게 목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목표를 먼저 세워 놓고 그에 맞는 공부를 하라는 정 선생의 고3 학생들을 위한 조언이다. 아니 대학진학을 원하는 모든 고등학생들에게 적용되는 조언이다.

간혹 학생들이 점수에 맞춰 진로를 결정하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가졌던 그는 “자신의 특성을 살려 목표를 설정하라”고 강조한다. 진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그의 가치이다.

 

# 나는 지리를 가르칩니다

정 선생은 지리를 가르친다.

충북지리과교사 연구회를 구성해 지리과 교수․학습 개선을 위한 연구활동을 하고, 각종 장학자료 개발에 참여했다.

교과교육혁신연구 도규모 1등급(2006), 교과교육연구 도규모 1등급(2008), 중등교과교육연구회 도규모 2등급의 연구를 수행하는 가하면, 지리올림피아드에서 지도교사 표창을 수차례 수상했다. 교과교육 연구활동으로 교육인적부 장관 표창(2006)을 받기도 했다.

‘땅이름이 들려주는 우리 고장의 역사문화 이야기’, ‘길 끝에서 나누는 충북문화 이야기 33색 33향’ 등의 장학자료는 그의 손길이 닿은 작품이다.

 

충주고등학교 동아리 ‘지리와 독서가 만났을 때’는 이름에서처럼 지리와 독서를 접목시켜 정 선생이 만든 동아리이다. 지리와 관련된 책들을 읽고 독서토론도 하고, 책 속 지리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며 답사활동도 한다. 좀 더 현실적이고, 친근한 지리와의 접근, 아울러 독서의 활용은 그가 착안 해 낸 좋은 학습법인 듯하다. 그러니 학생들이 지리올림피아드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둘만하다. 이 지리올림피아드를 통해 서울대에 특기자전형으로 합격시키는 전력을 또 남긴다.

연수에 대학 그의 기록에도 ‘동공’이 커진다.

충주고등학교에 부임해 현재까지 15회, 692시간 연수를 하면서 자기개발을 해 왔다.

“3학년을 맡다보니 논술, 독서 등 진학지도에 관련된 연수를 많이 받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독서지도사 자격증도 따게 되고, 안전관리지도사 자격등도 갖게 됐어요.”

연수도 진학지도에 필요한 것을 골라서 받는다는 그. 3학년 부장을 맡을 만하다. 그의 열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진학지도에 가장 필요한 정보력 확보를 위해 그는 ‘여유로운 시간’을 느낄 기회가 없다. 틈만 나면 각 대학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정보를 얻고, 자료를 수집한다.

“고3 담임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열정’입니다. 아이의 잠재력과 에너지를 끄집어 낼 수 있어야 하고,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3학년을 가르치는 교사 뿐 아니라 모든 교사들이 가져야 할 자질이지 않을까 싶다.

 

 

# 죽어서도 선생님이고 싶습니다

“나중에 죽으면 묘비명에 ‘선생님이었다’라고 써 줬으면 좋겠습니다.”

먼발치서 예전에 자기를 가르쳤던 교사가 오고 있다고 가정하자. 선생이 가까이 오기 전에 마주치지 않으려고 길을 돌아가는 학생이 있는 가하면, 마주친 후에야 인사 정도 하고 가버리는 학생이 있고, 일찍 알아보고 한걸음에 달려와서 반갑게 맞이하는 학생이 있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학생이 아니고 선생이다. 반갑게 달려와 인사를 하는 학생은 분명 그 선생에게 좋은 영향을 받고, 참 사랑을 받은 학생임에 틀림없다. 반면 선생과 마주치기도 싫은 학생은 그 선생에게 안 좋은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예를 들며 정 선생은 적어도 자신은 언제 봐도 반가운 선생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모든 학생들에게 ‘좋은 선생’, ‘참 스승’으로 남고 싶은 그의 바람이다.

“평생 평교사를 하고 싶어요.”

어찌된 일인지 그는 스스로 능력이 없다고 말한다. 이제까지 ‘충북교육’ 책자에 소개된 선생님들을 보니 다들 대단한 분들이던데, 정작 자신은 순탄하게 교직생활을 해 온 평범한 교사라며 몸을 낮춘다.

모든 교사들이 정 선생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 전 턱이 계속 앞으로 돌출하는 희귀병을 고치고자 양악수술을 한 제자를 병문안 갔다가 그가 들은 한 마디 “선생님은 정말 선생님이세요”. 이런 말이 그로 하여금 평생을 평교사로 지내면서 ‘참 스승’으로 살고 싶은 소망을 더 갖게 해 주는 것이 아닐까.

“취미요? 시간이 없어서…. 유일한 취미는 목욕탕 가는 거예요.”

소박한 웃음을 짓는 정 선생. 교실 창 너머로 뉘엿뉘엿 저무는 욕심없는 햇살이 꼭 정 선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글: 정예훈, 사진:충주고 제공